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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黃鎭賢 藝術의 價値 - 아서 맥타칼트 (Arthur J. McTaggart Ph.D. 전 영남대학교수)
  글쓴이 : gallery     날짜 : 10-05-04 13:23     조회 : 5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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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멕타가트평론-한글.hwp (26.0K), Down : 7, 2010-05-04 13:23:57
화가 黃鎭賢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예술은 과연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의 작품이 우리를 더욱 매혹시키는 것은 그가 독특한 기법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19세기 말에 이태리에서 형성된 비교적 덜 알려진 마치아이올리(Macchiaioli)라는 일단의 화가들이 처음으로 사용한 기법을 그가 “再發見”하였다 함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들은 플로렌스와 나폴리에 거주하면서 당시 프랑스의 이름난 인상주의자들이 추구하고 있던 회화적 관심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림은 어디까지나 그림에 그쳐야 하며 설명이 아님을 애써 강조했었다. 그러기 위하여 그들은 밝은 색채의 물감을 패치(色조각: Macchia-이태리어)형으로 칠하여 관람자가 패치로 형성된 사물의 형태를 감지하기 전에 색채자체를 감지하도록 시도하였다. 플로렌스의 화가인 지오바니 화토리(Giovanni Fattori 1825~1908)가 이 그룹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작가이다.  黃鎭賢의 화풍과 더 가까운 작가는 이웃 마르세이유 출생의 프랑스 작가 아돌프 몬티첼리(Adolphe Monticelli 1824~1886)이다. 몬티첼리는 生時보다는 오늘에 와서 더 높이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가 20세기 회화에 미친 충격은 지대한 것이다.  黃鎭賢은 워싱톤 DC 에 있는 코콘 콜렉숀이나 루브르 미술관, 뉴욕의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몬티첼리의 콜렉숀들을 관람할 기회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황진현이 효과적인 표현방법으로서 그와 동일한 수법을 택하고 있음을 볼 때, 생시에는 덜 주목받았던 몬티첼리가 걸어온 예술적 행로를 黃씨도 비슷하게 탐구하면서 이에 당도된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몬티첼리는 작품주제로 庭園情景을 즐겨 그렸으며, 색조는 단색을 주조로 한 동색계의 變調를 사용하였다.  한편 黃씨는 동일한 패치(색조각) 수법을 구사하고는 있으나 대상은 마치아이올리波가 즐겨 다루었던 소재에 더 가까우며 생활주변에서 흔히 보는 서민의 생활상을 의도적으로 다루고 있다.

黃씨의 작품 “노점상과 마누라”(1984)에서 나타나는 강한 水平構圖(하부경계의 빛나는 색채의 물체와 상부경계의 에워싸는 듯한 斑點으로 표현한 양산)는 이태리 화가 마치아이올리波의 구도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들 플로렌스와 나폴리 화가들은 정통적 아카데믹 훈련을 철저히 받았으며 뛰어난 묘사력이 그들의 강점이었다. 몬티첼리는 주로 대상을 한가운데 두고 構圖外廓으로 대상을 확대해가는 표현을 많이 취하였었다. 黃鎭賢은 스스로 자수성가한 표현주의자 임을 자각하고 있으나 그는 최고의 명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뉴욕 미술학교에 다닌 바 있어 그곳 걸작들과 접할 기회가 많았으며 대가들이 어떻게 작품을 제작했으며 어떻게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던가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다.

나는 한국미술 애호가들이 黃씨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한국인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19세기의 프랑스 애호가들이 몬티첼리에게 보여준 관심보다는 훨씬 더 뜨거운 평가를 해줄 것임을 확신한다. 몬티첼리는 불행하게도 명성을 生時에는 누리지 못하고 타계 후에야 누렸지만 黃씨의 작품은 오늘 그 진가를 평가받음이 마땅하다고 본다. 마치아이올리波는 이태리에서는 그 명성을 떨치지 못했지만, 후세에 다른 나라에서 출현한 이 재능 있는 화가 黃씨를 그들의 서클에 동지로 가입시켜 환영할 것이며 黃씨의 작품에 표현되고 있는 색채의 재인식과 한국인의 삶의 생동감에 공감을 표해마지않을 것이다.

1986.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