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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현의 화필 열정 -이구열(2008.1)
  글쓴이 : gallery     날짜 : 08-08-11 10:11     조회 : 5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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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은 경제적인 삶과 문화적 혹은 예술적 삶으로 대별 될 수 있다. 경제적인 삶이 일반적인 것이라면 예술적인 삶은 창조적인 선택의 삶이다. 예술적인 삶으로서의 창조적 활동의 본질은 남달리 타고난 천성의 예술적 감성의 재능을 자신의 작품에 실현 시키고, 또한 그 작업 혹은 행위를 부단히 지속하며 정신적 또는 감각적 창의성을 높은 차원으로 거듭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로써 삶의 독자성 혹은 그 자족을 지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 예술이란 감각적 또는 지적 소재를 미적 목적을 위하여 창작적으로 형상화 한 것 ” 이라는 말로 설명될 수도 있을 것이다. 본시 정부기구의 전문 경제관료 생활로 성공적인 위치에 가 있던 황진현이 천성적인 그림 재능을 억제치 못하여 결국 그 마음의 욕구를 따르기로 한 삶의 전환을 단행한 것은 중년에 접어든 40세의 시점이었다고 한다. 세속적, 경제적 성공을 멀리하며 숙명적인 ‘ 화가의 삶 ’ 으로 그렇게 전향해 버린 것이다. 그것은 천성의 예술적 삶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 새 삶의 화필생활은 그간 억제되었던 그림 그리기의 욕구를 거침없이 분출시키며 놀라운 몰입과 열중을 나타냈고, 급속하게 뚜렷한 예술적 자아세계를 실현시켜 갔다. 체내의 그 재질이 용출한 것이었다. 그 내면은 누군가가 이미 글로 썼듯이 안정된 증권 거래인 생활을 박차 버리고 궁핍한 화가로 삶을 바꾸어 세계적 화가가 된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거장 폴 고갱에 비유 되기도 한다. 황진현은 유능한 경제관료로 뉴욕 한국총영사관의 경제협력관 등을 지내기도 하던 가운데 뉴욕의 한 미술 연구소에서 약 3년간 정식으로 유화 수업을 한 사실을 늘 앞세운다. 반면 애초의 행정, 경제 전공의 대학 과정은 언급을 피한다. 화가의 길로 접어든 그에게 그런 무관 분야의 학벌은 무의미하게 여기게 된 것이다. 화가 전업으로 새 삶의 행로를 스스로 연 뒤의 그의 화필 열정은 그간의 비화가 시기의 공백을 일시에 만회 하려고 들듯이 맹렬하게 진행되었다. 그의 회화감각과 필치 및 색채의 감성적 약동은 급속하게 부각되고 그 기법과 표현정신의 창작적 자율성 또한 놀랍게 발휘되어갔다. 지난 40년간 황진현의 유화(근래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아크릴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에서 일관되게 발휘되고 전개된 격렬한 색채 구사의 생동감과 사실주의 정신에 입각하면서도 현실적 대상의 추상적 해체 또는 자유로운 비사실적인 표현주의 필치 구사의 순수한 회화적 밀도는 대단한 창조적 저력을 엿보게 한다. 그 생동적 형상의 회화 작업은 초기 단계부터 취미그림의 형태와 수준을 완전히 넘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니 오늘의 시점에서의 황진현의 뚜렷한 작품 창작의 내면은 그의 독자성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는 나와의 대화에서 몇 번씩이나 강조하려고 한 말이 있다. “ 우리 양화 계 작가들 중에서 나만큼 많이 그린 작가는 없을 걸로 단언한다. 그 점 나는 자부한다. ” 그건 사실일 듯하다. 2004년에 그가 스스로 편집하여 간행한 대형 화집 [황진현] 에는 공직생활 시기였던 1970년에 상당한 수준으로 능란하게 그린 수채화 [창 밖의 풍경]으로부터 30여 년간 열정적으로 그려 온 무수한 유화 가운데에서 447점을 골라 수록하고 있다. 그 작품들은 감상자들의 시선과 관점을 명료하게 유도하게 주제별로 편집구성이 되어있다. 곧, ‘ 초기 작품 : 1970-1980 ’ , ‘ 후기 작품 : 1981-2004 ’ 으로 시기적 대별을 하면서 ‘ 후기 작품 ’ 수록에서는 다시 집중적 명제인 [미술기행] (세계 각지 여행그림), [시장], [인물] (누드포함), [바다], [꽃], [군상], [풍경] 의 연작으로 세분하고 있다. 그 많은 대작과 위주의 수록작품들을 면밀히 살펴 보노라면 작가의 너무나 엄청난 화욕(畵慾)과 표현욕(表現慾) 의 충만에 기가 질릴 정도이다. 거기에 소요된 모든 재료비(유채와 캔버스 등)는 또 얼마나 엄청 났을까. 과연 다른 어느 화가가 황진현 만큼 그렇게 많은 작품을 제작해 보인 예가 있을지, 나부터도 아마 없을 걸로 생각이 든다. 그 자체만으로도 황진현은 대단한 작가이다. 게다가 그의 화면들은 모두가 대단히 생동적이고 열정적인 표현감정으로 충만하게 그려진다. 화면마다 인물, 풍정 등의 이미지가 가득 차게 표현되며 너무 많이 그리려 든 듯한 태도의 필치와 색채 작업의 중첩이 특질을 이룬다. 격렬하고 혹은 강렬한 색채 구사의 주제 형상에 내포된 자유로운 창작미의 회화적 순수성은 깊은 표현적 차원을 구현한다. 그리고 앞에 열거한 집중적 연작 명제의 이미지들은 모두 국내외에서의 풍부한 체험적 자연미와 현실미의 정서적 또는 감성적 표현 충동으로 주제가 되면서 그를 창작적 변용 또는 자율적 형상미의 창작 그림으로 완성되곤 하는 것이다. 이는 작가의 창작 역량의 자유로움을 웅변해주는 것이다. 이는 “ 예술이란 현실 대상의 모방적 표현을 넘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라는 기본적 정의의 실현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자연미 또는 현실미의 모방, 곧 그 대상의 사실적 재현을 넘어서 자신의 감성의 회화 세계를 창출하는 황진현의 유화들을 깊이 살펴보면 그의 독자적 미의식의 정감과 창의적 표현 감정이 얼마나 밀도 짙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느낄 만하다. 예술이란 결국 그렇게 작가의 독자적 표현 형태를 통해 창조되는 형상 인 것이다. 황진현 작품의 여러 경우 또는 어느 화면의 형태에 사실상 추상적 표현이 거침없이 이루어지기도 하는 것도 그의 창작정신의 순수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한 요소야말로 그의 정신적 내지 예술적 자유로움이다. 그는 그림을 팔아야 생활을 해결하는 경제적 속박이 없이 여유 있게 화필작업에 전념하는 듯이 보인다. 그런 면에서 그는 매우 유복한 처지인 셈인데, 그런 가운데 엄청 쌓인 작품들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큰 애착은 2004년에 서울 송파구 오금동 대로 변에 스스로 자신의 그림생애를 기념 하려고 한 ‘ 황진현미술관 ’ 으로 표출되고 있다. 아담한 4층 규모의 그 공간에서 그는 그간의 작품들의 주제별 전시를 일정 기간씩 스스로 꾸미기도 했다. 내가 이 작가의 맹렬한 화필생활을 처음 깊이 눈여겨보기 시작한 것은 25년 전인 1984년 개인전(문예진흥원 미술회관) 때부터로, 그 카탈로그에 서문을 쓰게 된 계기에서였다. 그때 이미 그는 매우 확실한 화필 저력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의 그림의 주제 대상은 그때에도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 중심이 두어진 풍경과 정경이었다. 그 집중성은 오늘 날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며 황진현 예술의 본색으로 정형화 되어 왔다. 앞의 개인전 서문 때에도 나는 이렇게 썼다. “ 그의 회화의식과 조형사고를 매우 뚜렷이 반영하는 격정적 붓 놀림과 나이프 작업의 자유로운 혼용, 그리고 풍부한 색채구사의 표현적 깊이로 전개되는 인물상과 인물들이 움직이는 광장, 시장, 가게, 항구 풍경 등은 기법상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주목할만한 작품들이다. ” 화가의 삶에 전념하기 시작한 초기의 기법적 미흡의 일면을 언급했지만 전시작품의 대다수는 표현적 능숙함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 그는 이미 아마추어가 아니며 화가로서의 성공적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 는 점을 부연해 쓰기도 했다. 오늘에 이르러 황진현 회화세계의 심도와 원숙의 내면이 결국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하는 것은 수십 년 지켜본 나로서도 찬양하게 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건강을 많이 상실하고 있는 속에도 그는 현재 변함없이 작품 의지의 강렬함을 잘 유지하고 있다. 올해 팔순을 맞이하는 그의 예술의 그런 노경(老境)이 주위와 더불어 평온한 축복이 되고 있다. 200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