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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 김 상 철(월간 미술세계 주간)
  글쓴이 : gallery     날짜 : 08-06-30 15:50     조회 : 5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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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진현은 작업의 연륜이나 그가 감내한 세월의 무게에 있어서도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작가는 아닐 것이다. 유난히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우리 화단은 그가 지닌 독특한 이력과 입문과정을 들어 그를 기꺼이 받아들이기 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다. 더불어 특정한 사승이나 인간관계의 의지함이 없이 오로지 자신의 개성과 신념으로 일관해 온 그의 작업역정 역시 그의 오늘을 만들게 된 한 원인일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업 역정은 각별한 것이었고 작가로서의 입문과 성장, 그리고 안정에 이르는 과정은 일반적인 작가들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의 분투는 남다른 것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 황진현은 고급 경제관료 출신으로 6,70년대 우리나라의 경제부흥과 근대화에 청춘을 바쳤다. 경제기획원 등 정부의 주요 직책을 거쳐 공직을 마감하기까지, 그의 인생 역정은 작가의 그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관료의 길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시기는 작가 자신의 의지에 따른 본연의 목적과 지향을 지닌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상황과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또 다른 길이었던 셈이다. 자신의 내면에 충만해 있던 작가에의 길을 미루어 두고 사회적인 상황과 삶의 조건에 따를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처지에 놓이게 된 그의 일상은 마치 불완전 연소된 삶처럼 미진하였을 것이다. 공직의 순환에 따라 미국 뉴욕에 부임하게 된 작가는 침잠된 채 억눌려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의 내면에 살아있던 작은 불씨를 발견하게 된다. 뉴욕의 한 미술교습소에서 우연히 잡게 된 화필을 통해 이미 죽은 듯 조용히 내재되어 있던 작가에 대한 열망과 희구를 발견해 낸 것이다. 작가 황진현은 이내 그 작은 불씨를 온전히 살려내는 것이 바로 삶의 완전한 연소에 이르는 길임을 확인하게 된다.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고 그저 자신의 내면에 은밀하게 침잠되어 있던 또 하나의 길은 그렇게 먼 이국땅에서 어렵사리 그 본연의 움직임과 향방을 발견하고 회복하게 된 것이다.
작가로서의 분명한 지향을 회복한 그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우회함으로써 지체되었던 시간들을 만회하기 위해 치열하게 작업에 매달리게 된다. 의연하게 공직을 사퇴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으로 진행된 작가의 작업은 밤을 새워 이루어졌으며, 그것은 마치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온전히 연소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열 몇 시간에 걸친 노동과도 같은 작업은 그에게 차라리 고통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이를 감내하며 정체되고 지체되었던 본연의 길을 회복하는 노력을 경주한 것이다. 마침내 작가로서의 지향과 목표를 분명하게 지닌 그의 장정은 시작하였으며, 그 멀고 지난한 길은 오늘에까지 쉼 없이 그 걸음을 이어오며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작가로서의 황진현이 주목한 것은 삶의 현장에서 포착되고 체감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유미주의적인 서정적이고 장식적인 화면 대신 굳이 땀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시정의 귀퉁이를 작업의 대상으로 취한 것은 매우 시사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그에게 있어서 작업이란 단순히 여기(餘技)의 소극적인 것이 아니라, 삶과 인생을 체험하고 표현하는 적극적인 의미가 전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굳이 일상적인 소재 중 가난하고 소외된 인간과 그들의 삶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노동이 지니고 있는 신성한 가치와 의미에 대한 긍정의 표출에 다름 아닌 것이라 할 것이다.
그는 두텁고 질박한 덩어리진 색채들로 이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출해 내었다. 그의 화면은 분명 소외되고 각박한 현실 속에서 생존의 현장을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이들에게 시선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 시선은 대상이 지니고 있는 객관적인 상황의 재현이나 무책임한 고발의 그것이 아니다. 그는 따뜻하고 연민어린 시각으로 이들을 감싸 안으며, 이들이 감내하고 있는 지난한 삶과 그 무겁고 어두운 그림자마저도 마다하지 않고 조형을 통해 고스란히 수용해 내고 있다. 그의 화면은 마치 쇠손으로 흑 벽을 바르듯 거칠고 투박하지만 그 이면에는 포근한 시선과 애정 어린 연민의 시각이 자리하고 있음이 여실하다. 그러하기에 그의 화면에 나타나고 있는 인물들은 비록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삶을 마주하고 있기에 결코 비굴하거나 초라하지 않다. 작가는 이들을 통해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노동이 지니고 있는 신성한 가치와 의미를 진지하게 표출해 내고 있는 것이다. 비록 힘들고 어두운 곳에 자리하지만 여전히 삶에 대한 긍정과 도전을 통해 건강한 일상을 일궈 나가는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언제나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일상의 언저리에서 포착되어진 대상들은 강한 원색을 통해 일종의 원시적인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그저 삶에 지치고 소외된 패자의 나약함이나 무기력함이 아니라 여전히 욱욱한 생명의 에너지를 지니고 있는 건강한 것이다. 브러쉬의 감각적이고 섬세함 대신 나이프의 단순 명쾌한 표현과 특유의 질감을 취하고 있는 그의 표현은 대상에 육박하고자 하는 그의 조형의지가 반영되어진 결과라 할 것이다. 가난, 혹은 노동에 대해 그저 사실적인 접근과 표현이 아니라 그것이 지니고 있는 건강한 가치와 의미를 확인하며 이들을 감싸 안고 있는 그의 화면은 온기를 지닌 감성적인 것이라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내 작업은 권위에 대한 도전과 약자에 대한 긍휼, 그리고 기성에 대한 반감 등이 담겨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그가 지향하는 작업이 단순한 조형의 구축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이는 그의 작업의 바탕이 되고 있는 ‘가난에 대한 긍정과 노동이 지니는 신성한 가치에 대한 인정, 그리고 허위와 가식에 대한 분노’ 등에 대한 구체화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화면에는 굳이 구체적인 형상의 표현이나 사실적인 묘사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감성과 사유의 발현을 위한 두터운 색채들의 집적이 두드러진다. 형상의 번잡스러움에서 벗어나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사유를 표출하고자 하는 그의 화면은 두텁고 거친 원색들의 대립과 충돌, 그리고 융합과 조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독특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모든 예술은 음악적 상태를 지향한다.’라는 말과 같이 이는 독특한 운율과 리듬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심약한 도시적 세련미를 추구하지도 않으며, 화려한 장식적 화면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작가의 화면을 통해 발현되는 것은 다듬고 꾸며진 기교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칠고 억센 생명의 리듬이며 땀과 눈물이 있는 현장감의 생기인 것이다.   
작업에 대한 열정은 엄청난 작업량으로 이어졌으며, 조형에 대한 진지한 호기심은 다양한 실험으로 이어져 그의 작업내용을 풍부히 하였다. 분방하고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삶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여전히 멈춤이 없다. 그것은 단순한 조형의 대상으로서가 아닌 인간과 삶에 대한 애정과 긍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스스로 에너지를 생성하며 다양한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작가는 삶과 인간에 대한 관찰에 있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체 관조하며 방관하는 소극적인 자세가 아니라, 삶 속에 직접 뛰어들어 더불어 호흡하고 더불어 체감하는 적극적인 것이다. 그 시선은 여전히 젊고 건강한 것이며, 이를 표출해 내는 필촉들은 충분히 강건하고 힘찬 것이다. 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여전히 처음과 같은 강렬한 의지와 향방을 견지한 채 삶의 경험과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지혜를 바탕으로 따뜻하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할 것이다.

2008. 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