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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진현의 ‘긍휼 인간학’ - 서성록(안동대 미술학과 교수), 한국 미술 평론가협회 회장
  글쓴이 : gallery     날짜 : 08-06-26 11:49     조회 : 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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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필치와 강렬한 대조
황진현씨의 그림은 강렬한 색깔과 힘찬 필치, 역동적인 공간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림을 살피다보면, 산책할 때의 여유로운 기분보다는 속보로 걸을 때의 숨차 오르는 소리를 감지할 수 있다. 붓질이 종횡무진 화면을 드나들고 색깔이 휘황찬란하게 공간을 누빈다. 마티에르는 쉴새없이 용트림을 하며 사람을 놀래키고 화면의 지축(地軸)을 뒤흔든다. 자신의 내적 갈등을 소진시켜버릴 듯한 표현적인 다이너미즘 앞에 사람들은 적잖이 당황하게 될 런지도 모른다.
대체로 이런 표현주의적 성향은 그의 모든 작품 전반에 기조를 이룬다. 그리고 그가 80년대서부터 지금까지 제작한 그의 작품 모든 시기에 걸쳐 골고루 나타난다. 대범하게 디테일을 생략한 인물과 풍경들, 정서적인 작가의 입김이 화면을 휩쓸어버리고 지나간 뒤에는 분절된 이미지, 강한 콘트라스트, 무색해진 공간감,과감한 생략 등이 남게 된다.
황진현씨는 일찍이 화가가 되고 싶어 했으나 고교 2학년 때 아버지의 별세로 졸지에 소년 가장이 되어 다른 전공을 선택해야 했다. 1962년에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하여 오랜 기간 경제 관료로 국가를 위해 봉사했다. 1974년에서 1977년까지 주미경제협력관 으로 뉴욕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 기간에 그는 어려서부터 간직해온 미술에 대한 꿈을 실현시키기로  결심한다. 퇴근하면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로 곧장 나가 실기를 연마하면서 동경해마지 않았던 화가로서의 전문훈련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임기를 마치고 경제기획원 국장으로 복귀한 후 3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그 직을 떠나 화가의 길로 나서게 된다. 그 시기가 그의 나이 51세 때였으니까 화가로서는 뒤늦은 출발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작업을 하기 전인 1970년대에 독학으로 제작한 <창밖의 풍경>,<광릉>,<곤지암>,<불타는 가을>을 보면 조형감각이 착실히 다듬어진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홀연 예술의 길로 뛰어든 것은 아마 관료로서의 삶보다는 화가로서의 삶이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화가는  화폭에 무엇을 담았을까? 그의 작업실을 몇 차례 방문해 그림을 살피고 나니 겨우 알 것같았다. 한 두차례 갔을 때는 여러 점을 볼 요량으로 그런 생각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황진현씨의 그림이 인간에 대한 ‘긍휼(矜恤)’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관료로서 다져진 경륜을 포기하고 화가로 새 출발하는 데는 단지 그림을 좋아하는 본인의 취향 이상의 것, 즉 인간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의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의 작품은 여러 장르, 즉 풍경화, 여행기록, 정물,인물, 농악 등으로 나뉘어져 있어 한마디로 정리하기가 곤란하다. 모든 작품에는 각기의 주제가 달려 있다. 그런데도 필자가 그의 작품을 ‘긍휼 인간학’으로 부르게 된 까닭은 작품의 기조가 약자에 대한 훈훈한 만남,친밀한 교제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시장 상인들, 노점상, 골목길 서민들, 행상,부두의 일꾼, 구두수선공, 아이 등이다. 흔히 인물화에서 볼 수 있는 귀 티 나는 여인이나 고매한 인물, 혹은 근엄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주인공들은 진정으로 의존이 필요한 사람들이며, 서로는 연약함으로 연결짓고 있는 사람들이다. 황진현씨는 우리를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라는 연약함의 공간으로 초대한다. ‘무관심’과 ‘냉담’, ‘탈취’ 따위는 그의 그림세계와는 관계없는 낱말들이다. 낮은 실존의 존재를 적나라하게 제시함으로써 제약없는 사랑이 그가 추구하는 내용임을 귀뜸해준다. 대체로 1982년에서 2001년까지의 작품에서 이같은 사실을 점검할 수 있다.
<목노주점>(1982),<자전차 점포>(1982),<과일 노점>(1982),<뜨리미>(1982),<골목길>(1982),<시장>(1982),<어시장흥정>(1982),<입항>,(1982),<꽃장수>(1982),<시장>(1982년),<구두수선공>(1983),<속초시장>(1984),<호기심>(1985),<재래시장>(1985),<월동준비>(1982), <해방촌골목>(1986), <시장 >(1993),<과일 노상>(1984),<어머니와 어린이>(2000),<한여름의 시장>(1994),<속초거리 >(1994),<상가>(1994), <거리에서>(1996),<바다이야기> (2001), <부부>(1997),<남대문시장> (1999), 청과시장 (1999), <엄마와 시장에>(1999), <정오의 도시> (1997)
그의 약자에게 보내는 박수는 사실 우리 본성에 어긋하는 것이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며 해를 입기를 각오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보내는 제약없는 사랑을 보고 있자면,  ‘안전’을 최우선으로 살아온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두려움 없는 만남
그의 시선은 주로 시장과 노점, 어촌의 사람들에게 모아진다. 그속에서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동료인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진실’이 자유로운 행동의 흔들리지 않는 기초임을 암시해준다. 상대를 삐딱한 눈으로 바라보고 의심하며 등 뒤에 칼을 감추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는 오히려 상대에 대한 굳건한 믿음과 신뢰, 따듯한 온기로 사랑하는 연인의 몸을 덮어주듯이 부드러움으로 그들을 덮어준다. 화가에게 있어 그들과의 만남은 두려움없는 헌신의 표현이다.
남편의 무사귀환을 기다리는 어부의 아내, 힘겨운 하루가 지나 피곤해하는 과일 행상, 손님의 구두를 고치는 수선공, 겨울의 혹한을 피해 두툼한 옷을 걸친 노점상인, 물건만 수북이 쌓인 상인의 수심 어린 표정, 보호와 안전없이 거리로 내몰린 서민,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애쓰는 아주머니 등.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가진 것이 없는 약자들이다. 그리고 황진현씨가 그들에게 애정의 눈길과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 화가의 매서운 관찰력으로 그들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아픈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옮겨내고 있다. 더 이상 무슨 표현이 가능하랴. 윌리엄 모리스(W.Morris)의 시 제목처럼 “사랑으로 충분하다.”
물론 황진현씨가 동료 인간에 대한 관심만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훨씬 가벼운 그림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는 외무부 관료로 여러 나라에 체류한 경험을 갖고 있다. 공직을 그만 둔 뒤로도 여행을 즐겨 세계의 각 도시나 풍물을 사생하기도 했다. 예루살렘의 성전, 콩코드 광장,맨해튼 거리와 조지 워싱턴 다리, 예루살렘의 순례지, 중동의 유목민들, 인도네시아 기차안 모습, 파리의 빌딩,인도 아낙네와 목동, 버킹검 풍경,회교사원,아테네 풍경 등을 꾸준히 그려왔다. 
미술기행을 하면서 제작한 작품들은 크게 풍경화와 인물화로 나뉘어져 있는데 대체로 그 나라의 명승지나 서민의 일상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화풍상으로는 좀더 단순한 수법이 강조된다. 가령 나이프로 긋거나 빠른 붓놀림으로 대상을 처리하는 수법이 두드러진다. 움직이는 대상을 그리거나 다른 곳으로 신속하게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보다 표현적인 방법을 일일이 그리는 방법보다 나이프나 간략한 필치에 의존하는 수법을 애용하였으리라 본다.
인물을 중심으로 한 그림이 아픔과 고뇌가 실린 어둔 분위기라면, 미술기행의 그림은 활기차고 명랑한 분위기이다. 여행자로서의 가벼운 시선과 흥겨운 심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인지 빨갛고 파랗고 노란, 울긋불긋한 색상들이 만국기처럼 그림에 펄럭이며 감상자들을 유혹한다.

상대의 환대
같은 말이라도 그것을 자주 발설하다면 효력이 떨어진다. ‘애정’이란 말이 그러하다. 애정이란 우리의 삶을 통해 슬며시 숨어 있거나 슬쩍 나타나는 것이다. 공공연히 발설하고 다니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C.S. 루이스의 표현대로 “애정은 수수하고 적나라하며 사사로운 것들과 함께 한다.” 루이스에 의하면, 애정을 공공연하게 만드는 것은 마치 집안에 있는 가구를 이사하기 위해 바깥으로 내다놓은 것과 같다고 한다. 즉 가구는 실내에 있으면 근사하게 보이지만 바깥에서 햇살을 받으면 보잘것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행동으로 조신하게 옮겨야 할 것을 말로 떠벌이고 다니면 바깥에 내놓은 가구처럼 초라해 보인다.
황진현씨의 작품에 ‘애정’이란 말은 땅속에 감추어져 있는 보석과 같다. 스스로 그것을 좀처럼 드러내는 법이 없다. ‘애정’이 자주 발설된다면 그 말이 지닌 뜻은 약해진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헤프게 사용할수록 실효가 떨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람에게 보내는 깊은 애정은 작품의 표층 뒤에 슬며시 깃들어 있다.
웬만해서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작품속에 실려있거나 작품과 함께 있을 따름이다. 그 자체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의 작품은 약자에게 보내는 응원이자 격려이다. 거창하게 무슨 슬로건을 내걸기보다는 상대를 조용히 품에 안는다. 이것이야말로 완전한 자유의 표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올해로 팔순을 맞지만 황진현씨의 작품은 연세를 무색케 한다. 젊고 싱싱한 예술의욕을 지닌 화가 앞에서는 나이도 오금을 펴지 못한다. 그가 붓을 놓지 않는 한 우리 곁에 ‘현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2008. 2